2025. 3. 3. 01:58ㆍ카테고리 없음
1936년 - 1939년 동안 스페인에서 일어난 대규모 내전.
19세기말 스페인이 몰락하는 중.
군대- 식민지들이 없어지면서 존재 가치를 잃어버림. 존폐위기
1914년 세계1차대전 발발. 러시아 혁명 -> 스페인 영향.
아나키즘(무정부주의) - 바르셀로나 중심으로 활동.
1923년 헌법을 무시하고 빨강 바르셀로나를 진압하기 위해 진군.
알폰소13세 국왕 적극 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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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대공황 이후 1931년 공화당이 선거에서 이김. 바르셀로나에서 공화국 선포
토지 교육 종교 군부를 개혁하려함. but 행정력이 좋지 않았음.
1933년 우파정권이 다시 재집권하였고, 개혁을 되돌리려하였음.
1934년 반대시위가 일어났고, 같은 스페인 사람들로 구성된 군대를 동원할 경우, 진압에 소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을 생각하여 외인 부대 ('프랑코'장군이 포함)도 동원.
1936년 다시 좌파와 공화파는 선거를 통해 재집권 -> 군부반란 쿠테타
대부분의 스페인 전역을 장악했으나, 마드리드 바르셀로나는 노동자계층들이 잘 방어하여 장악에 어려움을 겪음.
성직자들도 군부 편이었는데 종교개혁에 반감을 사고 있었기 때문.
지역사회에서 영향력이 강한 성직자, 지주는 군부편.
마드리드 바르셀로나를 장악하는데 어려움을 겪은 군부는 파시즘 정권 이탈리아와 독일에게 지원을 요청하였고, 이 두나라는 바로 전폭적인 지원.
공화파도 영국과 프랑스에게 도움을 요청하였으나, 소극적으로 대응. (소극적인 조약)
영.프 모두 버림을 받은 공화국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소련에 지원요청. 내전 직전까지 소련(스탈린)과 큰 접점이 없었음.
스탈린이 공화파에 전쟁물자가 도착.
네그린 vs 프랑코.
1939년 1월 바르셀로나 프랑코가 점령.
네그린은 프랑코와 협상하려하였으나, 내전이 끝나고 반란군에 맞서 싸운 모든 사람들에 대한 보복을 하지 않을 것을 조건을 프랑코가 거부하면서 협상은 결렬되었음.
1939년 3월 마드리드가 점령당하면서 최종 프랑코 승리로 끝남.
이 내전 과정에서 운이 좋은 사람들은 중남미 국가로 피신하였지만, 대다수는 근처 국가 프랑스로 피신하였다. 프랑스는 프랑코와 독일, 이탈리아의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들을 수용소에 가두었음. 프랑스 정부는 이들 중 건장한 남성들에게는 일종의 선택지를 주었는데, 프랑스의 외인부대에 복무하거나 노동력을 제공하는 대가로 수용소에서 벗어나게 해주었음. 그러나 곧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하게 되면서, 프랑스의 레지스탕스에 합류하거나 포로가되어 아우슈비츠와 같은 집단수용소에서 목숨을 잃었다.
2차세계대전이 끝났음에도, 프랑코의 스페인은 연합국의 인정을 받으면서, 현재까지 내전 이후 자행된 탄압에 대해 공식적인 조사 및 교육은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